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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종묘[宗廟]의 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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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종묘[宗廟]의 봄

MORO 2014. 4. 7. 10:30

 

종묘 [宗廟]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종로 157 ☎ 02-765-0195 [홈페이지 : http://jm.cha.go.kr]    

 관람 : 외대문(정문)  ▶ 망묘루 ▶ 공민왕신당 ▶ 향대청 ▶ 재궁 ▶ 공신당 ▶ 칠사당 ▶ 정전 ▶ 정전수복방 ▶ 전사청 ▶ 제정 ▶ 영녕전 ▶ 정전 악공청 ▶ 영녕전 악공청 

 정보 : 사적 제125호. 태묘(太廟)라고도 한다. 종묘 정전, 별묘(別廟)인 영녕전(永寧殿)과 공신당(功臣堂)·칠사당(七祀堂)·재궁(齋宮)·전사청(典祀廳)·향관청(享官廳)·제문(諸門)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종묘의 기원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392년(고구려 고국양왕 9)에 종묘를 수리했다는 기록이 최초로 보인다. 그밖에 시조묘·동명묘·국모묘도 모두 종묘에 해당하는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그러한 제도가 갖추어져 있었음을 알려준다. 고려시대에는 국초부터 종묘의 제도를 갖추기 시작하여 성종 때 완비되었다. 고려의 종묘는 9실(室)로 되어 있었으나 때로는 5실로 하고 동서에 협실을 두기도 했으며 종묘 정전 이외에 별묘를 설치하기도 했다. 조선왕조가 건국된 후 고려의 종묘를 철거하고 새로 지었는데 새 종묘가 완성되기까지는 태조의 4대 조상 신위를 임시로 효사관에 봉안했다. 종묘가 낙성된 것은 공사에 착수한 지 1년 만인 1395년(태조 4) 9월이며, 그 위치는 한성부 동부 연화방으로 지금 종묘가 있는 곳이다. 이때 종묘의 규모는 태실(太室 : 정전) 7칸, 좌우 익실(翼室) 각 2칸, 공신당 5칸, 신문(神門) 3칸, 동문 3칸, 서문 1칸으로 모두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담 밖에는 행랑과 재궁을 비롯한 건물들이 자리잡았다. 종묘가 준공된 이후에도 각종 보완공사가 행해졌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에 의해 잿더미가 되었고 1593년(선조 26) 10월에 환도해서는 심연원(沈連源)의 집을 임시 종묘로 삼았다. 1608년(광해군 즉위) 5월에 종묘가 중건되었는데 그 규모는 병화로 소실되기 직전의 그것과 같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뒤 병자호란으로 종묘의 신위를 강화도로 옮겨갔으나 다시 서울의 시민당(時敏堂)으로 옮기고 29신위를 모두 개조, 태묘와 영녕전에 봉안하고 파손된 신위는 종묘 뒤에 묻어 봉안했다. 1870년(고종 7) 1월에 종묘와 영녕전의 신위를 창덕궁으로 옮겨 봉안하고, 개수공사에 착수해 그해 3월 공사를 완료한 다음 신위를 본처에 봉안했다. 지금의 종묘 태실 19칸은 이때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종묘 안의 부속건물로는 태실 서쪽에 지어진 영녕전과 역대 왕의 공신을 배향한 공신당, 그밖에 칠사당(七祀堂)이 있다.

 

 

 

 

 

 

 

 

 




2014-04-05 09:47:47 | THE WORLD HERITAGE CHONGMYO SHRINE
CANON EOS 60D | EF 24-70mm F2.8L USM | F3.2 | 1/2000s | 70.00mm | +0.00EV | ISO-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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